ISSUE – 건축사사무소에 갑질 일삼는 지자체

사전검토 거치지 않은 내용으로 설계 종용
적정 공사비 140억 원, “72억 원에 공사해라” 하며
시의회에는 124억 원으로 공사비 증액 요청
72억 공사비 부당, 무리한 주장 스스로 인정하는 꼴
무리하게 축소된 공사비로 사업 추진
설계 건축사에 책임 전가 "알고 보니 반복된 관행"
과업 지시서에 설계변경 발생할 경우
추가 대가 없이 설계변경 이행 독소조항 명시 등
“잘못된 관행 시정돼야

시흥시의 갑질 피해를 입은 ‘J 건축사사무소’(가명) 김 모 건축사가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시흥시의 갑질 피해를 입은 ‘J 건축사사무소’(가명) 김 모 건축사가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설계공모에 당선돼 과업을 수행 중인 건축사사무소의 중간 납품(검토 도서 등)을 고의 지연 거부해 과업기간이 만료되도록 유도하고, 설계대상 건축물의 규모를 실제와 달리 축소 기획한 채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건축사사무소에 모든 책임을 전가한 이른바 갑질 지자체가 한 언론 보도에 등장하면서 건축계의 분노를 사고 있다. 

보도에 등장하고 있는 이 지자체는 과거 설계 공모 당시 ‘수급인은 설계 납품 후 설계변경이 발생할 경우 별도의 대가 요구 없이 설계변경을 이행해야 하며, 건축물 준공시 시공자의 준공도면에 대한 확인, 검토 및 전산처리를(세움터 접수 인증 포함)해야 한다’는 강압적이자 설계자의 권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소조항이 가득한 과업지시서를 제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 시흥시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원 건립을 둘러싸고 건축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건은 시흥시가 장현공공주택지구 공공청사 부지에 ‘문화원 건립공사 기본 및 실시설계’ 과업을 추진하면서 비롯됐다.

해당 설계공모에 당선된 ‘J 건축사사무소’(가명)에 따르면 공공건축은 조성 기획단계에서 국책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의 공공건축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사전검토를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시흥시는 1차 기획내용을 가지고 사전검토 절차를 통과, 임의로 2차 기획안 마련 후 사전검토를 거치지 않은채 사업을 추진했다.

국가공공지원센터(건축공간연구원)에 유선 확인 결과, 사전검토 시 시흥시가 제출한 내용은 부지면적 4,500제곱미터, 연면적 2,800제곱미터, 지상 3층 규모였다. 

◆ 시흥시, 불가능한 공사비
   사전 인식 ‘의혹’


다시 말해 1차 기획내용은 연면적 2,791제곱미터, 지상 3층, 지하1층 규모의 건축물이었고, 이를 사전검토 받았으며, 임의수정한 2차 기획내용 2개층의 층고를 가진 강당과 1, 3층의 외부필로티 공간 약 1,500제곱미터가 추가 된 연면적 4,500제곱미터(실내면적 2,878제곱미터),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의 건축물로 탈바꿈한다. 사전검토 없이, 규모는 더 커진 내용의 설계를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관련해 J 건축사사무소 김 모 건축사는 “문제는 시흥시가 법적으로 산입되어야 할 필로티 면적을 외부공간이라는 이유로 연면적에서 제외하고, 공사비 산정에서도 빼어버리면서 발생했다”며 “바로 공사비 부족 문제가 현실화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J 건축사사무소는 정보공개청구, 감사 청구 및 연루된 시흥시 직원의 업무배제를 요청했지만 정보공개 처리 내역·감사결과를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흥시 문화원 조감도 (자료=J 건축사사무소,가명)
시흥시 문화원 조감도 (자료=J 건축사사무소,가명)

이 부분에 대해 시흥시는 진작부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3월 15일 시흥시 누리집에 게시한 시흥시 문화원 건립공사 설계공모 질의답변서에는 최근 제시된 공공발주 사업에 비해 현저하게 공사비가 낮다는 점이 지적됐다. 2개층의 층고를 가진 컨벤션 공간, 연면적에 산입되지 않은 필로티 면적 등을 고려하면 실제 공사면적은 더 커지고, 공사비 역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질의가 있었다. 

시흥시는 답변에서 설계추진과정에서 관련법에 규정된 물가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은 협의할 사항이라고 밝혔으며, 건축허가시 건축법상 필로티 면적이 바닥면적에 산입되는 경우는 법 규정에 맞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J 건축사사무소에 따르면 외부 면적에 대한 지적 등에 대해 시흥시는 외부면적을 제외하고 산정된 공사비 72억 원에 맞추라고 강요하는가 하면, 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과업 참여 건축사사무소에 법적 책임이 있고,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며 협박했다.

실제 시흥시 문화원에 책정된 공사비 단가는 제곱미터당 250만2,000원(3.3제곱미터당 826만원)으로 최근 시흥시에서 발주한 시흥미디어센터 공사비 단가 363만 원(3.3제곱미터당 1200만 원)에 비해 31% 낮게 책정됐다. 비슷한 일은 시흥시 노인요양 포괄케어 타운 설계 과업에서도 반복됐다. 과업을 맡은 건축사사무소는 공사비를 못맞춰 계약해지의 위기를 맞았다.

◆ 시간 끌기로 과업 기간 만료,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J 건축사사무소는 ’23년 5월 24일 중간납품을 했지만 시흥시는 공사비와 구조시스템 미결정 등의 이유로 납품을 거부했다. 발주처의 책무인 구조시스템, 예정공사비 등 핵심 결정사항에 대해 제대로 된 결정을 해주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과업기간이 만료됐다는 게 J 건축사사무소의 설명이다.

한편, 시의회에 보고된 공사비는 124억 원이다. 2023년 9월 22일 생산된 ‘2023년 제4차 수시분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에 따르면 사업변경 시설비 예산이 124억 원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에 대해 J 건축사사무소는 “72억 원의 예산을 고집한 시흥시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인정한 대목임에도 아전인수격 해석을 일삼고 협박과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부당한 요구와 갑질 사례는 또 있다. 최초 RC 구조에서 ’23년 1월 시흥시와의 협의를 통해 해당 건축물은 철골구조로 구조체가 변경됐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설계 변경 대가와 계약기간 연장 없이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변경을 재차 요구했다. J 건축사사무소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조 안정성, 공사비, 시공안전성 등을 고려해 철골구조 방식이 더욱 적합하다고 주장했지만 과업완수가 우선 목표가 됐던 탓에 시흥시의 안하무인식 대응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의견을 한 번 수용하자 시흥시는 ’23년 9월 19일 회의에서 같은해 12월 초까지 구조변경, 기술자문, 건축허가, 계약심사까지 완료할 것을 또, 강당 인테리어 과업을 대가 없이 추가 수행할 것을 강요했다. 

과업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난 ’23년 10월 시흥시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 이어지는 소송으로 김 모 대표 건축사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시흥시의 갑질과 고압적인 태도, 부정당업체 지정 등을 생각하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또 경기가 어려워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사무소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밝힐 것”이라며 “계약해지의 책임은 시흥시에 있다는 점을 반드시 관철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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