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은 기획업무에서 시작된다. 용도와 규모, 대략의 배치를 통해 설계단계에 필요한 사항들을 결정한다. 또한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용역비와 공사비를 산정하여 예산을 수립한다.

이 과정이 충실하지 않으면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것과 같게 된다. 간혹 기획업무 진행자가 규모와 용도 설정을 잘못하거나 예산을 충분하지 않게 수립한다면, 계획 및 실시설계 설계자의 업무 진행이 어려워진다. 여전히 설계자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잘못 규정하고 있는 등의 문구를 포함한 공모서와 지침서가 내용을 복사하여 재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공사비 역시 터무니없이 적게 산정되는 경우가 종종 찾아진다.

필요한 내용을 작성할 기획업무 진행자의 능력과, 내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획업무가 공공건축 업무 전반에 대한 가이드인데, 가이드를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것이 가장 첫 번째 벽이다.

두 번째 벽은 설계공모 과정의 문제들이다.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리라 예상되는 사전접촉과 로비문제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어렵지만 정황상 여전히 남아있다고 느껴진다. ‘로비는 범죄다’라고 이야기해도 자신의 허물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객관적으로 설계안을 평가할 수 있다면 심사가 진행될 필요가 없겠지만, 심사는 심사위원의 권위로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되어 진행되는 것이기에 부정한 청탁에 의해 결과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일단 소문이 파다하고 많은 분들이 심사부정을 의심하는 심사위원이라도 배제하면 안 될까. 또한 심사위원의 심사비용을 대폭 올리고, 심사부정이 적발되었을 때 엄중한 패널티를 받도록 해야 한다. 몸이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찾아내려는 노력 없이 그저 끙끙 앓고만 있을 것인가.

민간의 일이 줄어들다보니 설계공모에 수십 개의 설계안이 제출되고 있는데, 왜 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 하나의 당선작이 선정되는 것을 위해서 수많은 건축사들이 몇 주 동안 설계안을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 과연 대가 없이 반복돼야 하는가 물음을 던진다.

제출물을 줄이거나, 수상작의 수·상금을 늘리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설계안 제출자에게 기본적인 비용이 지급하면 될 일이다. 억측일 수 있지만, 많은 작품이 제출되는 것을 설계공모의 흥행이라 생각하는 발주처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대가 없이 기획업무를 요구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벽은 시공과정에 설계자가 가지는 역할과 권한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원래 건축사가 재료와 시공방법을 지정하도록 되어있으나, 민간은 물론이고 공공건축의 경우에도 발주처에서 임의로 재료나 색상을 변경하는 경우가 여전하다.

우리나라만 유독 설계자의 시공과정에 관여가 어려운 편이며, 설계의도 구현 업무도 실질적으로 시공자와 감리자의 업무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설계자가 직접 감리할 수 있는 범위가 좁혀진다는 입법 발의에 신진 건축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설계와 감리를 분리해 보다 철저한 감리를 하자는 취지도 이해되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완성도 높은 공공건축을 위해 무엇이 더 좋은 방법일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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